삼성혈

 
 

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사적지.

사적 제134호. 〈고려사〉에는 모흥혈(毛興穴)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, 

지금의 제주도인 탐라(耽羅)의 개국신화에서 고(高)·양(良:지금의 梁)·부(夫) 

3성씨의 시조인 고을나(高乙那)·양을나(良乙那)·부을나(夫乙那)가 

솟아난 것으로 전해지는 구멍이다(→ 색인 : 삼성신화)

삼성혈은 땅 위에 옴폭하게 패인 작은 구멍들인데, 사적의 보호를 위해 울타리로 막아놓았다. 

밑변이 넓은 3각형을 이루고 있으며, 3각형의 위쪽 모서리를 이루는 구멍에서 

고을나가, 왼쪽 구멍에서 양을나가, 오른쪽 구멍에서 부을나가 솟아났다고 한다. 

그 가운데 하나는 둘레가 6자이며 바다까지 이어져 있고 

나머지는 둘레가 3자라고 전해지지만, 지금은 그 자취만 남아 있을 뿐이다.

 

삼성혈이 성역화된 것은 조선 중종 때의 목사인 이수동(李壽童)이 

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후손들로 하여금 제사를 지내게 한 데에서 연유한다. 

이수동은 삼성혈의 북쪽에 혈비(穴碑)와 홍문(紅門)을 세우고 

11월에 유교식으로 혈제를 지내도록 했다. 

숙종 때 절제사 유한명(柳漢明)은 삼성혈의 동쪽에 삼을나묘(三乙那廟:

지금의 三聖殿)을 세웠고, 순조 때 방어사 이행교(李行敎)는 전사청(奠祀廳)을 지었으며, 

헌종 때 방어사 장인식(張寅植)은 숭보당(崇報堂)을 세웠다. 

현재는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삼성전에서 매년 봄가을에 춘추제(春秋祭)를 지내고, 

혈단에서는 매년 12월 10일 건시제(乾始祭)를 행하고 있다. 

사적으로 지정된 지역은 모두 2만 3,420㎡에 달한다.→ 삼성신화

 

분류